이혜경, [금빛 날개](작가세계) 중에서 2010/03/31 02:00 by 마왕

이혜경의 소설은 감기거나 달라붙지 않고 스며든다. 한번에 문을 확 하고 열어 버리기보다는 마음의 좁은 틈 사이를 서서히 파고든다. 이번 <작가세계> 봄호는 이혜경을 다루고 있다. 반갑다. 여러 문예지를 늘어놓고 무얼 읽을까 하다가 단숨에 집어들었다. 신작 단편 [금빛 날개]가 실려 있는데 단숨에 읽었다. 조금 교훈적이다. 밑줄 친 문장을 옮겨 본다.

- 너는 주위에 힘이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너 혼자 일어서야 한다. (21쪽)

- 어머니는 퍼석퍼석한 머리에 득득 긁은 바늘로 그의 엄지손가락 끝을 쿡 찔렀다. 검은 피가 방울처럼 맺히며 커지더니 주르륵 흘렀다. 그는 그 피가, 멍든 심장에서 바로 흘러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23쪽)

- 잊고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버튼만 눌리면 울컥, 역류하는 하수처럼 치받는 기억. (23쪽)

- 오똑한 콧날이며 쌍꺼풀 없이 기름한 눈매, 야무진 입매까지 영락없이 그 자신을 빼닮은 아기를 보며 그는 비로소 자기가 왜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지 깨달았다. 이 아기가 모욕의 비에 젖는 일이 없도록 하리라. (26쪽)

- 어떤 사람에게는 누추함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신기함일 수도 있다. (27쪽)

-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듣는 동안, 온몸의 피가 그 음악을 향해 쏠리는 느낌이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슬픈 듯 장중한 합창이 그의 몸에 스며들고, 그의 심장을 울렁이게 했다. (27쪽) 

- 과외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으로 학비를 지탱해야 했으므로, 잠들 때조차 이를 악문 듯한 느낌이었다. (27~28쪽)

- 존재 자체가 남에게 폐가 되는 삶을 살다 보면, 그 삶이 자기를 파고들어 그나마 남아 있는 무언가를 갉아버린다. 부모에게서, 부모를 보는 친척들에게서 그는 그걸 느꼈다. (28쪽)

- 몸은 비록 노예로 잡혀와 강제 노동에 시달리지만, 생각만은 금빛 날개를 타고 돌아가리라는 그런 노래를. (29쪽)

- 결핍을 모르고 자란 아내는 어떤 일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해결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31쪽)

- 꿈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기쁜 얼굴을 보는 게 더 소중했다. 사랑은 희생을 요구하나니, 사랑에 빠진 그는 그 희생의 달콤하고 씁쓰레한 뒷맛을 음미했다. (31쪽)

- 사회복지라니, 제 밥벌이조차 못해서 그와 같은 사람이 죽어라고 일해서 낸 세금을 쓰게 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겠다는 것 아닌가. (31쪽)

- 어릴 적부터 부모 말에 순종하던 큰애는, 그동안 자기 주장을 안 한 게 이 하나의 결심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는 듯 단단했다. (32쪽)

-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에요." (32쪽)

- 대도시가 아닌 지역 사회에서 살자면, 마음에 안 드는 일도 접어둘 줄 알아야 한다. (33쪽)

- 붉은 기 도는 흙 때문일까, 분명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었을 흰 벽이 탈지면처럼 깨끗하게 느껴졌다. (34쪽)

- 구부정한 몸은, 남의 밑에서 평생 조아리는 데 익숙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가끔은 그도, 금빛 날개로 제 몸을 때려가면 날다가 쉬어야 할 때가 있다.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