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연표 5] 주나라 (1) 무왕(武王)에서 목왕(穆王)까지(기원전 1122~947) 2010/03/15 19:28 by 마왕

 

기원전 1122년(을묘)~1116년(을유) 주나라 1대 임금 무왕(武王) 희발(姬發) 


기원전 1122년(을묘), 주나라 무왕(武王) 희발(姬發)이 크게 제후들을 봉했다. 희씨 성을 가진 자손들 중 미치거나 정신이 나가지 않았으면 모두 작위를 내리고 땅을 찢어 주었다. 제나라 태공(齊太公) 강상(姜尙)이 숨어 사는 선비인 광휼(狂矞)과 화사(華士)를 무고해 살해했다.

기원전 1120년(경진), 주나라가 도읍을 풍읍(酆邑)에서 호경(鎬京)으로 옮겼다.

기원전 1116년(을유), 희발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성왕(成王) 희송(姬誦)이 자리를 이었다.



기원전 1116년(을유)~1079년(임술) 주나라 2대 임금 성왕(成王) 희송(姬誦) 


기원전 1116년(을유), 주나라 성왕 희송이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주공(周公) 희단(姬旦)이 재보(宰輔)가 되어 정치했다.

기원전 1115년(병술), 희송의 작은아버지인 관후(管侯) 희선(姬鮮), 채후(蔡侯) 희도(姬度), 곽후(霍侯) 희처(姬處) 및 은나라 유민들의 우두머리인 자무경(子武庚) 등이 군대를 일으켜 모반하자 주공이 동쪽으로 가서 정벌했다.

기원전 1114년(정해), 주공이 자무경과 관후 희선을 죽이고 채후 희도를 내쫓았다. 곽후 희처의 작위를 낮추어 평민으로 삼았다.

기원전 1113년(무자), 주공이 호경으로 개선했다.

기원전 1112년(기축), 성왕이 작은아버지 희봉(姬封)을 강후(康侯)로, 동생 희우(姬虞)를 당후(唐侯)로 봉했다.

기원전 1110년(신묘), 주공이 명당(明堂)에서 제후들을 접견했다.

기원전 1109년(임진), 주공이 겹욕(郟鄏)에 성을 쌓고 ‘왕성(王城)’이라 불렀다. 또 낙수(洛水)의 북쪽에서 성을 쌓고, ‘성주(成周)’라 불렀다. 이 해, 주공이 성왕에게 정권을 돌려주었다.

기원전 1108년(계사), 주공의 아들 희백금(姬伯禽)을 노공(魯公)으로 봉했다.

기원전 1107년(갑오), 성왕이 주공을 감금하려 하자 주공이 노나라로 달아났다.

기원전 1105년(병신), 주공이 세상을 떠났다.

기원전 1089년(임자), 성왕이 왕성에서 제후들을 크게 모으자 사방의 오랑캐들이 내조했다.

기원전 1079년(임술), 성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강왕(康王) 희쇠(姬釗)가 자리를 이었다.



기원전 1079년(임술)~1053년(무자) 주나라 3대 임금 강왕(康王) 희쇠(姬釗) 


기원전 1078년(계해), 제후들이 왕성에 모여 조현했다.

기원전 1067년(갑술), 당후(唐侯) 희우(姬虞)가 나라 이름을 진(晉)으로 고쳤다.

기원전 1063년(무인), 노공 희백금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고공(考公) 희추(姬酋)가 자리를 이었다.

기원전 1059년(임오), 노나라 고공 희추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양공(煬公) 희희(姬熙)가 자리를 이었다.

기원전 1057년(무진), 제나라 태공 강상이 세상을 떠났다.

기원전 1053년(무자), 연나라 소공(召公) 희석(姬奭)이 세상을 떠났다. 이 해에 강왕 희쇠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소왕(昭王) 희하(姬瑕)가 자리를 이었다.



기원전 1053년(무자)~1002년(을묘) 주나라 4대 임금 소왕(昭王) 희하(姬瑕) 


기원전 1037년(갑진), 주나라 소왕 희하가 초(楚) 땅을 공격하러 가다가 대시(大兕, 외뿔이 달린 푸른색 들소.)를 만났다.

기원전 1034년(정미), 소왕이 다시 초 땅을 공격했으나 여섯 군을 잃고 패하여 돌아왔다.

기원전 1002년(을묘), 소왕인 다시 초 땅을 공격했다.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던 길에 한수(漢水)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다. 아들 목왕(穆王) 희만(姬滿)이 자리를 이었다.


기원전 1002년(을묘)~947년(갑술) 주나라 5대 임금 목왕(穆王) 희만(姬滿) 


기원전 990년(신묘), 주나라 목왕 희만이 견융(犬戎)을 공격하여 그 왕 다섯 명과 흰 이리 사백 마리, 흰 사슴 사백 마리를 사로잡았다.

기원전 988년(계사), 곤륜(崑崙)을 정벌했다.

기원전 952년(무진), 목왕이 여후(呂侯)에게 명하여 형법을 마련하게 하니, 후세에 이를 여형(呂刑)이라 불렀다.

기원전 947년(갑술), 목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공왕(共王) 희이호(姬伊扈)가 자리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