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漢書 [후한서] 황후기 (2) - 서문 2 2009/10/16 15:20 by 마왕

나중에 광무제가 [한나라를] 다시 일으켰을 때, 섬세하게 새긴 것을 깎아[斲彫]1) 질박함으로 돌아갔으니 육궁(六宮, 황후와 비빈이 거하는 여섯 궁궐)에 이름을 붙였지만 [후비는] 오직 황후와 귀인만을 두었다.2) 귀인은 황금으로 만든 인장에 자주색 인끈을 받았으나 녹봉은 곡식 수십 섬을 넘지 않았다. 그 밑으로는 미인(美人), 궁인, 채녀(采女) 세 등급만을 두었는데, 모두 관작과 녹봉이 없었으며 해마다 때에 맞추어 상을 내려 쓸 것을 보급했을 뿐이었다. 한나라 법에는 늘 8월에 산인(筭人)3)을 행했는데, 이때 중대부(中大夫)를 액정승(掖庭丞) 및 상공(相工, 관상쟁이)과 함께 파견하여 낙양 여러 마을을 돌면서 양갓집을 검열한 후 나이 열세 살 이상 스무 살 이하의 어린 여자아이 중 자색이 곱고 아름다우며 관상이 맞는 이들을 선발했다. 그러고는 이들을 수레에 싣고 후궁으로 데려와 자세히 살피면서 가부를 가린 후 천거하여 [궁인으로] 썼다. 이렇게 하여 현명하고 신중하게 궁인들을 맞아들이고 정숙하고 밝은 이들을 자세히 살펴 구할 수 있었다. 명제는 광무제의 뜻을 엄히 지켜 틈날 때마다 궁궐 안의 예의와 가르침을 힘써 배우게 하고 황후나 비들을 올려 봉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덕을 다스리게 하니 궁궐 안의 말이 문턱을 넘어 바깥으로 나가는 법이 없었으며4) 사사로움에 빠져 권세를 내리는 바가 없었으니 가히 그 폐단을 바로잡았다고 할 만하다. 외척(外戚)을 금지하기 위해 갑령(甲令)5)을 다시 엮어 후비 제도를 고치고 바로잡은 끝에 이를 지금에까지 이르게 하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비록 [명제가] 자기를 다스려 법도가 있었을지라도 [외척의] 방비가 아직 두텁지 못했기 때문에 장제 이후부터는 점차 미색을 받아들이고 권세를 내리며 은혜의 융성함이 총애에 부합하는 바가 많아져 끝내 검은 좀벌레들[淄蠹]6)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예부터 임금이 어리고 시절이 어려우며 왕실에 재난이 많을지라도 반드시 재상[冢宰]에게 책임을 맡기고 충성스럽고 어진 이들을 간절히 구했지 여자에게 오로지 책임을 맡김으로써 무거운 그릇[重器]이 쪼개져 깨지게 하는 경우는 없었다. 돌이켜 보면 진나라의 미 태후(羋太后)7)가 처음으로 섭정을 시작했는데, 그로 인하여 양후(穰侯)의 권력이 소왕(昭王)보다 무거웠고, 그 집안이 영국(嬴國, 진나라 왕실의 성씨가 영(嬴)이므로 영국은 진나라를 가리킨다.)보다 부유했다.8) 한나라는 그 잘못을 거듭하면서 근심거리임을 알았지만 고치지는 못했다. 동경(東京, 낙양) 시절 황제의 혈통이 몇 차례나 끊어져 권력이 여자 군주에게 돌아갔다. 이에 바깥에서 옹립한 황제가 넷이나 되고,9) 여섯 황태후가 조정에 나와 섭정했는데,10) 모두 장막[帷帟] 뒤에서 몰래 정책을 정하여 아버지나 오빠에게 일을 맡긴 후 어린아이들을 찾아 황제로 세워서 오랫동안 정치를 하고자 했으며, 어질고 현명한 사람들을 억누르면서 그 위세를 마음대로 떨쳤다.11) 맡은 바는 무겁고 갈 길은 먼데 이익을 탐하는 마음은 깊고 화는 빨리 다가왔다. 그리하여 몸은 운대 위에서 안개와 이슬[霧露]12)의 침범을 받았고, 집안의 갓난아기조차도 감옥[圄犴]에 잡혀가 포승줄에 묶인[縲絏] 몸이 되었다.13) 자취 없이 사라지는 일이 잇달아 일어났고[踵], 수레 끌채가 뒤집어지는 일이 길에서 계속되었다.14) 그러나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끊이지 않아 불에 타서 재가 되기에 이르렀으니 끝내 나라의 큰 운명이 내리막길을 걷고[陵夷] 신령한 보물[神寶]도 잃어버리게 되었다.15) 『시경』과 『상서』에서 이미 탄식한 바 있는 것처럼, 이는 거의 하나의 법칙이라고 할 만큼 비슷했다. 그러므로 [후비들의] 행적을 낱낱이 고찰해 이를 「황후본기(皇后本紀)」로 삼는다. 일의 성패(황후에 오르거나 폐위되거나 하는 일을 말한다.)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나 일단 올바른 호칭[正號, 황후를 말함.]과 같이 거했던 이들은 모두 하나의 편으로 나란히 기록했다. 사적인 은택을 입어 추존된 사람은 당시에 직접 받들었던 바는 아니므로 다른 일에 딸려서 부가적으로 기록했다.16) 그 친족들 중에서 따로 기록할 만한 사적들은 각각 열전(列傳)에서 다루었다. 그 나머지 중에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모두 여기 「황후기」에서 다루어서17) 『한서』「외척전(外戚傳)」을 이었다[纘].18)



1) 새기는 것[彫]은 깎아서 장식하는 것이다. 『사기』에 “한나라가 일어섰을 때, 모난 것을 깨뜨려 둥글게 하고 다듬은 것을 깎아 질박하게 했다[破觚而爲圓, 斲琱而爲璞].”라는 말이 있다.


2) 정현은 『주례주』에서 “황후는 정침(正寢) 하나와 연침 다섯을 두는데, 이것이 바로 육궁이다.”라고 했다. 부인 이하는 거기에 나누어 거한다.


3) 『한의주』에 따르면, “8월 초에 산부(筭賦, 한나라 때 성인 한 사람당 받던 세금.)를 받으므로, 이를 산인(筭人, 사람 수를 센다는 뜻)이라 한다.”


4) 곤(閫)은 문지방을 말한다. 『예기』에 따르면, “바깥의 말은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지 말아야 하고, 안의 말도 문지방 바깥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


5) 『한서』 「음의」에 따르면, “갑령은 황제가 가장 앞에 내세우는 명령이다. 차례로 갑령, 을령(乙令), 병령(丙令)이 있다.”


6) 치(淄)는 흑(黑), 즉 검다는 뜻이다. 두(蠹)는 나무를 먹는 벌레이다. 이는 나라가 기울어져 마침내 패망함을 비유한 것이다.


7) 미(羋)는 음이 망(亡)과 이(爾)의 반절이다.


8) 미 태후는 진나라 소왕의 어머니이다. 선 태후(宣太后)라고 불렸다. 『사기』에 따르면, 소왕이 세워졌을 때, 나이가 어렸으므로, 선 태후가 몸소 정사를 살피면서 친동생 위염(魏冉)을 장군으로 삼아 정치를 맡기고 양후로 봉했다. 황태후가 섭정한 것은 이로부터 비롯했다.


9) 안제, 질제, 환제, 영제를 말한다.


10) 장제의 두 태후(竇太后), 화희태후(和熹太后) 등 씨, 안사태후(安思太后) 염 씨, 순렬태후(順烈太后) 양 씨, 환사태후(桓思太后) 두 씨, 영사태후(靈思太后) 하 씨를 말한다.


11) 『주례』에 따르면, “막인(幕人)은 휘장과 천막[幃帟幄幕]을 맡는다.” 정현은 『주례주』에서 “역(帟)은 천막 중에서 앉은자리 위쪽을 덮어 먼지를 막는 장막[承塵]을 말한다.” 상제가 붕어했을 때, 등 태후는 오빠 등질 등과 더불어 안제를 맞아들여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때 나이가 열세 살이었다. 충제가 붕어했을 때, 양 태후가 오빠 양기와 더불어 질제를 맞아들여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때 나이가 여덟 살이었다. 질제가 붕어했을 때, 태후는 오빠 양기와 더불어 환제를 맞아들여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때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다. 환제가 붕어했을 때, 두 태후는 아버지 두무와 더불어 영제를 맞아들여 황제로 옹립했는데, 이때 나이가 열두 살이었다.


12) 무로(霧露)는 질병을 말한다. 지적해 말하면 죽을까 두려웠으므로 안개와 이슬[霧露]을 빌려 그에 대해 말한 것이다. 영제 때, 중상시 조절이 거짓 조서를 내려 태후를 운대로 옮기게 했다. 사필(謝弼)이 밀봉 상서를 올려 말했다. “신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태후께서는 황제께서 제위에 오르는 것을 도우셨는데 이제 텅 빈 궁궐에서 숨어 지내시니 이는 [돌보는 이가 없어서] 안개와 이슬을 맞는 질병[霧露之疾]에 걸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폐하께서는 무슨 면목으로 천하를 바라보려 하십니까!”


13) 류(縲)는 삭(索), 즉 포승이라는 말이다. 설(絏)은 계(繫), 즉 묶는다는 뜻이다. 영어(囹圄)는 주나라의 감옥 이름이다. 향과 정에 있는 감옥을 안(犴)이라 한다. 음은 오(五)와 단(旦)의 반절이다. 이는 외척 등을 주살했음을 말한다.


14) 종(踵)은 적(跡), 즉 발자취라는 뜻이다. 주(輈)는 수레의 끌채[車轅]를 말한다. 가의(賈誼)에 따르면, “앞 수레가 넘어지면 뒤따르는 수레는 경계하게 된다.”


15)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것[陵夷]은 쇠퇴해 없어진다는 말이다. 신령한 보물[神寶]이란 황제의 자리를 말한다.


16) 안제의 어머니 좌희나 할머니 송 귀인 같은 사람을 말한다. 이 일에 대해서는 「청하효왕전(淸河孝王傳」에 자세히 나와 있다.


17) 가 귀인과 우 미인 같은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18) 찬(纘)은 계(繼), 즉 잇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