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漢書 [뉴스 속 후한서] 조선시대 ‘흥겨운 잔치’로의 초대 2009/10/10 14:26 by 마왕

<경향신문> 이기환 선임기자가 쓴 [조선시대 '흥겨운 잔치'로의 초대]라는 기사에 후한서가 언급되었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특별전(‘잔치 풍경-조선시대 향연과 의례’)이 열린다는 것을 알리는 기사이다. 시간을 내서 보러 가고 싶다. 후한서가 언급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또한 만고의 성인 공자(孔子)마저 “중국에서 예(禮)를 잃으면 동이에서 구했으며, 중국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군자불사(君子不死)의 나라 구이(九夷)에서 거하고 싶다”(<후한서·동이전> <삼국지·동이전>)고 했을 정도였으니….

이 부분에 해당하는 원문은 다음과 같다.

王制云:「東方曰夷.」夷者, 柢也, 言仁而好生, 萬物柢地而出[一]. 故天性柔順, 易以道御, 至有君子、不死之國焉[二]. 夷有九種[三], 曰畎夷, 于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四]. 故孔子欲居九夷也. 
[一]事見風俗通. 
[二]山海經曰:「君子國衣冠帶劍, 食獸, 使二文虎在旁.」外國圖曰:「去琅邪三萬里.」山海經又曰:「不死人在交脛東, 其為人黑色, 壽不死.」並在東方也. 
[三]竹書紀年曰「后芬發即位三年, 九夷來御」也. 
[四]竹書紀年曰「后泄二十一年, 命畎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后相即位二年, 征黃夷. 七年, 于夷來賓, 後少康即位, 方夷來賓」也. 

거칠게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이르길 “동방을 이(夷)라 한다.”라고 했다. 이(夷)는 뿌리[柢]라는 뜻이다. 어질어서 살아 있는 것을 좋아하니 만물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柢] 난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1) 천성이 유순하여 도리로써 다스리기 쉬우니 군자국(君子國)과 불사국(不死國)이 있기에 이르렀다.2) 이(夷)에는 아홉 종족3)이 있는데, 곧 견이(畎夷), 우이(于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이다.4)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다고 한 것이다.


1) 이 일에 대해서는 『풍속통(風俗通)』에 나온다.


2)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군자국(君子國)은 의관을 갖추고 검을 [허리에] 찼으며, 말린 고기를 먹고 두 마리 줄무늬 호랑이를 곁에 두었다.” 『외국도(外國圖)』에 따르면, “낭야국(琅邪國)에서 삼만 리 떨어져 있다.” 또한 『산해경』에 따르면, “불사국(不死國) 사람들은 교경국(交脛國) 동쪽에 사는데, 그 피부는 검고 오래 살아 죽지 않는다.” 이 모든 나라가 다 동방에 있다.


3)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따르면, “제분(帝芬, 하나라 8대 임금. 제괴(帝槐) 또는 분발(芬發)이라고도 한다.) 즉위 3년에 구이(九夷)가 들어와 다스림을 청했다.”


4) 『죽서기년』에 따르면, “제설(帝泄, 하나라 10대 임금. 후설(后泄)이라고도 한다.) 21년, 견이, 백이, 적이, 현이, 풍이, 양이에게 명을 내렸다. 제상(帝相, 하나라 5대 임금. 후상(后相)이라고도 한다.) 즉위 2년, 황이를 정벌했다. 7년, 동이에서 와서 복종했다. 후에 소강(少康, 하나라의 6대 임금)이 즉위하자 방이(方夷)들이 복종했다.”


대충 읽어 보아도, 원문과는 아주 많이 다르다. 그래서 혹시나 하여 기사에 같이 언급되어 있는 [삼국지] 동이전을 살펴보았다. 거기에 이 기사와 관련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雖夷狄之邦, 而俎豆之象存. 中國失禮, 求之四夷, 猶信.  

비록 오랑캐 땅이지만 [제사 지낼 때] 조두(

俎豆, 희생을 놓는 도구와 각종 그릇) 모양의

각종 그릇을 쓴다. 중국이 예를 잃어버리면 그것을 사방 오랑캐[四夷]에게서 구한다는 말이 있는데, 믿을 만하다.


그러니까 [삼국지] 동이전에는 중국이 예를 잃으면 그것을 구하는 곳이 동이가 아니라 

사방 오랑캐[四夷]

로 되어 있는데, 이는 동이족을 언급하면서 나온 이야기이니까 동이라고 보아도 상관은 없을 듯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예(禮)는 곧 제사이다. 동이족은 제사 지낼 때 따로 마련한 그릇을 쓸 정도로 법식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아마 그 제사 예절이나 그릇 등이 중국과 비슷했던 것 같다.

공자가 구이에서 살고 싶다고 한 말은 <논어>에 나온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子欲居九夷. 或曰陋如之何. 子曰 君子居之何陋之有.

공자가 구이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누추하실 텐데 어찌하시려고요?"라고 했다. 공자가 답했다. "군자가 산다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이 구절에서 중요한 것은 아마도 공자가 구이에서 살고 싶다고 한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군자가 거하는 곳에 누추함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논어>의 다른 부분을 검색해 보았지만 공자가 중국에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구이에서 거하고 싶다고 말한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이런 구절이 있었다.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공자가 말했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게 되면 나를 따를 자는 유(由, 자로)일 것이다." 자로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유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은 나보다 낫지만, 취해서 재단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 배에 올라타 바다로 나가게 된다는 게 어떻게 구이로 가고 싶다는 말로 바뀌게 되었을까? 이는 [한서]에 나오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구절에 근거한 것일 터이다.


東夷天性柔順, 異于三方之外, 故孔子悼道不行, 設浮于海, 欲居九夷, 有以也夫!

동이는 타고난 성품이 유순하여 [나머지] 세 방향[의 사람들]보다 뛰어났으므로 공자(孔子)는 도가 행하여지지 않음을 슬퍼하면서 바다에 배를 띄워 구이(九夷)에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이는 바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논어]에서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자로가 용맹하기만 할 뿐 사리에 맞게 판단하는 것은 잘 모름을 꾸짖는 데 있다. 이 구절이 실려 있는 공야장편 전체가 고금의 인물들의 사람됨을 다루고 있으니 이 맥락에서 읽어야 할 것이다.


또 "군자불사(君子不死)의 나라"라는 말은 장회태자 이현의 주에 따르면 군자국과 불사국으로 나누어 읽게 되어 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동이 땅에 이런 나라가 있었다고 믿었던 듯싶다(어쩌면 실제로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고전을 대할 때 원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잘 짜깁기 되어 있지만 [후한서]와 [삼국지]를 합쳐도 기사에 인용된 것과 같은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오직 [한서]에 비로소 비슷한 문장이 나오는 것이다.

오히려 내게 재미있었던 것은 동방과 불사의 이미지가 겹쳐 있는 부분이다. 진시황도 한무제도 모두 동방으로 불로불사의 약을 구하러 사람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 이유에 대해 기회가 닿으면 숙고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