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자책 서비스는 디지털 음악 서비스와 같은 길을 갈 것인가?
지난 포스팅에 필자는 전자책 비즈니스의 기본 모델인 아마존닷컴 모델과 에이전시 모델을 다루면서, 한국에서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아마존닷컴 모델이 아예 성립할 수 없음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에이전시 모델과 도서정가제는 사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음을 여기서 덧붙이려 한다.
종이책의 경우, 정가를 수정하려면 쇄를 다시 해 제작하거나 판권이나 표지를 재인쇄하여 제본하는 등 반드시 물리적 재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추가 비용을 들이고 나서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것은 어딘지 모순되기 때문에 일단 책 가격을 정한 다음에 이를 본래 책보다 낮은 가격으로 조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자책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전자책은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에서 가격 표시를 살짝 손대는 것만으로 쉽게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도서정가제 아래에서 전자책 서점이 아마존닷컴과 같이 가격을 할인해 전자책을 판매하는 것은 무조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출판사나 저자의 경우에는 공격적으로 전자책의 가격 결정권 행사하면 판매 시기나 장소에 따라 아마존닷컴은 12,000원, 애플스토어는 10,000원 하는 식으로 전자책의 정가를 달리 책정할 수 있다. 요컨대 도서 정가제와 달리 에이전시 모델에서는 정가를 공급자(저자나 출판사)가 수시로 조정할 수 있어서 같은 책이라도 정가가 복수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기존의 도서 정가제는 종이책 출판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필자가 아는 한 이렇게 출판사나 저자 스스로 가격을 파괴할 경우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아마도 추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몇 전자책 서점에서 벌인 각종 할인 이벤트 행위들은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점 측에서 정가를 조정함으로써 출판문화진흥법 제22조 간행물의 정가 표시 및 판매에 관한 규정을 공공연하고 명백하게 위반하고 있다. 두 가지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① A사는 최근 창립 13주년 기념으로 ‘선물 폭격 이벤트’를 실시했다. 그 이벤트 중 하나로 ‘전 ebook 30% 할인’ 서비스를 실시했는데, 2010년에 발행된 다수의 전자책 신간이 포함되어 있는 데다 출판사의 정가 재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으므로 이는 전형적인 도서정가제 위반이다. 또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면 ‘인기 ebook’ 2권을 무료로 제공한다는데, 이 역시 정가가 책정된 서적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므로 법 위반일 것이다. 또 최초로 전자책을 다운로드했을 때 ebook 3권을 추가로 제공하는 것도 과다한 경품 제공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② B사는 종이책에는 정가라는 말을 전자책에는 판매가라는 용어를 쓰면서 독자들의 혼동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해 교묘하게 도서 정가제를 위반하고 있다. 가령,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 <호출>은 올해 7월 30일에 출간되어 할인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판매가 3,500원으로 책정했다. 다른 전자책 서점들이 이 책의 가격을 모두 5,500원으로 표시한 것으로 보아, 직접 문의해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출판사인 문학동네에서 책정한 정가는 아마도 5,500원일 것이다. 따라서 A서점이 이를 거의 30% 이상 할인 판매하는 것은 출판사에서 정가를 조정해 A서점에 공급하지 않았다면 도서 정가제 위반에 해당한다. 게다가 B서점은 이벤트 페이지에서 전자책의 가격을 훨씬 높은 가격인 종이책 가격(11,000원)에 대비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자책의 할인율을 더 과장해 표시하고 있는데, 이 역시 얄팍한 상술일 뿐만 아니라 정가제 위반 소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전자책 판매 가격을 서점이 직접 조정해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으로 즉시 어떤 조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난호에 이야기했듯이 아마존닷컴은 자신들의 구매가 이하로 전자책을 판매함으로써 독자를 유인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킨들이라는 전자책 디바이스 판매에 따른 이득에서 벌충하는 고도의 전략을 통해 전자책 시장을 단숨에 장악했다. 이렇게 콘텐츠 가격을 제로에 가깝게 떨어뜨려 기존의 시장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 질서를 수립하는 것은 아마존닷컴만의 전략은 아니다. 이는 콘텐츠가 전자화하는 시기에 외부 투자를 받은 닷컴 기업 쪽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영세한 콘텐츠 기업들을 공략하면서 흔히 수행하는 전략이다. 뉴스 서비스나 음악 서비스 등이 이런 과정을 거쳐 콘텐츠 비즈니스의 주도권을 디지털 유통 기업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전자화되었다.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마존닷컴의 미국 전자책 시장 점유율은 9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격 파괴 방식의 시장 접근이 결국 도서 시장을 어떻게 황폐화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충분히 이야기되었다고 믿기에 이 글에서는 이를 따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는 <문화를 살리는 힘, 도서정가제>(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9)를 참조하라.)
지난 호 《기획회의》에 실린 최종수 실장의 글 제목처럼, 출판의 전자화는 이제 돌이킬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미래로 다가와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전자책 담론에 섞여든 거품을 제거하는 일과 전자책 비즈니스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을 확고하게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첫 발을 내디딘 전자책 시대가 조만간 다가올 미래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장밋빛 전망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전자책 시장의 성장은 당장 “[출판사 및 저자] 수익의 감소, 불법 복제 문제, 자가 출판(Self-publishing)의 활성화, 출판계의 구조 조정”(최종수, 119쪽) 등 출판계가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과 함께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간과하고 전자화 열풍에 쉽게 편승했던 음반 등 다른 콘텐츠 비즈니스 업계가 지난 십여 년 동안 어떤 수렁에 빠져들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인터넷 문화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에 따르면, “풍요로운 정보는 공짜이기를 원하고 희귀한 정보는 더욱 비싸지기를 원한다.”(유승찬, 「오선지 위에 올라탄 리눅스 혁명」(http://goo.gl/plZk)에서 재인용.) 인터넷 정신은 모든 정보의 대가 없는 공유를 요구한다. 책의 전자화 과정 역시 아마도 이를 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기업 입장에서는 무료에 가까운 콘텐츠를 통해서 이용자들을 끌어들여서 좋고, 이용자 입장에서는 질 높은 콘텐츠를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이러한 무료화 과정은 대다수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콘텐츠의 가격이 제로에 가깝게 떨어졌을 때 실제로 음악 비즈니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장밋빛 미래는 쉽게 공유되지만 암울한 현실은 누구나 외면하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아래에 소개한 아름다운 그래픽은 음악이 디지털화했을 때 음악을 일차로 생산하는 음악가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미국에서 CD 형태의 음반 가격은 평균 9.99달러이다. 이를 음악가가 직접 제작하고 좌판을 벌이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판매했을 때 음악가가 얻는 수입은 8달러이다. 따라서 그가 미국의 월 최저 생계비인 1,160달러를 벌려면 모두 143장의 앨범을 팔아야 한다. 미국 최대의 독립 음반 유통회사인 CDBABY는 이를 온라인 서비스하면서 CD와 같은 가격에 앨범 단위로 팔았다. 이 경우 CDBABY의 수수료 0.5달러를 제외하고 음악가의 수입은 7.5달러가 된다. 따라서 그는 155장의 앨범을 팔아야만 최저 생계비를 벌 수 있다. 자가 제작 음반으로 이 정도 수입을 얻는 것은 보기보다 쉽지는 않지만 음악가를 꿈꾼다면 이건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흔히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자기 음악을 알린다.
그러다 음반사들의 눈에 띄면, 다음 단계로 접어든다. 음반사들은 계약금을 주어 최저 생계를 보장하고, 우수한 장비를 제공하고 좋은 프로듀서를 붙이는 등의 방법으로 음악 품질을 높이며, 홍보나 광고로 널리 음악가를 알리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음악가들과 이익을 나누는 계약을 한다. 이때 계약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대개 무명 음악가는 음반사 수입의 15%를, 유명 음악가는 음반사 수입의 50%를 저작권료로 받는다. 그래픽에 따르면, 음반사는 유통 비용 등을 제외하고 대개 CD 한 장당 2달러 정도의 수입을 얻는다. 그렇다면 유명 음악가들은 CD 한 장당 1달러의 수입을, 무명 음악가는 장당 0.3달러 정도를 벌 수 있으며 유명 음악가들은 음반 1,161장을, 무명 음악가들은 3,871장은 팔아야 최저생계비를 벌 수 있다.
그 사이에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세상을 들썩였던 세 가지 온라인 음악 서비스가 놓여 있다. 냅스터와 아이튠스는 온라인 음악 서비스를 하면서 먼저 수많은 회원을 확보한 후 CD와 같은 가격인 9.99달러에 앨범을 판매했으며, 그 대신에 음반사에게 37%의 수수료를 받았다. 이때 음반사의 수입은 6.3달러로 올라가는 반면, 음악가의 저작권료는 여전히 그 판매가의 15%로 유지됨에 따라 오히려 0.94달러로 떨어졌다. 이런 이상한 계약이 오래갈 리 없으니, 당연히 사업이 자리 잡기도 전에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온라인 음악의 가격이 갈수록 파격적으로 떨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음반사의 수익을 줄이고 음악가의 수익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튠스 등 닷컴 기업의 영향력이 증가되면서 아이팟 등의 디바이스 판매를 위해, 아니면 통신 서비스를 위해 저가의 음원을 제공하는 쪽으로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CDBABY를 통해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음악가들은 75%의 수익을 받는 대신에 음악 가격을 0.99달러까지 떨어뜨린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제 음악가들의 수입은 0.74달러로 줄어들었으며, CDBABY와 아이튠스를 이중으로 거쳐야 하는 경우에는 다시 수입이 0.57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아마존과 아이튠스가 경쟁하는 시스템이 되면서 음악은 앨범 단위가 아니라 곡 단위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때 곡당 가격은 0.99달러였는데, 아마존과 아이튠스는 37%의 수수료를 받았다. 따라서 음반사 수입은 0.62달러가 되었고, 음악가들은 계약에 따라 그 수입의 15%인 0.09달러를 벌었다. 이는 매체 장악력을 갖춘 음악 기획사들이 엄청난 물량 공세를 쏟아부어서 만들어 내는 메가 히트곡 중심으로 음반 시장을 재구축하게 만들었으며, 그에 따라 무명 음악가들은 아무리 역량을 갖추었어도 음악 기획사의 눈에 띄지 않는 한 항구적으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음악 만화 <BECK>은 그 저간의 사정을 잘 보여 준다.) 어쨌든 아이튠스 시스템에서 음악가들은 최저 생계비를 벌려면 매달 12,399곡을 팔아야 하게 된 것이다.(물론 자가 배급을 하면 이보다 조금이라도 사정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음원의 질이 낮아지고 마케팅이나 홍보 등에서 다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판매량은 제자리걸음이 되어 문제가 별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엄청난 불가능이 악몽의 진정한 끝도 아니었다. 스트리밍 서비스인 랩소디, 라스트에프엠, 스포티파이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다시 악화된다. 랩소디는 소비자들에게 최초로 정액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음악가가 직접 음악을 올리는 경우, 그에게 0.0091달러를 준다. 이 경우 127,473곡이 스트리밍 되어야 음악가는 최저 생계비를 벌 수 있다. 또 음반사를 통해 음악을 올리는 경우, 음악가는 그 15%인 0.001365달러를 번다. 이 경우에는 849,817곡이 스트리밍 되어야 음악가는 최저 생계비를 버는 것이다. 무료 온라인 음악 서비스인 라스트에프엠이나 스포티파이에 이르면, 더욱더 상황은 악화된다. 무료로 음악을 듣는 대신에 중간중간에 광고가 삽입되는 스포티파이의 경우, 무려 4,549,020곡이 스트리밍 되어야 음악가가 최저 생계비를 벌 수 있게 구조화한 것이다.
이 끔찍한 상황에 대해 지난달 영국의 음악잡지 《뮤직 보이드(Music Void)》에 실린 「꿈은 사라지고 : 음반사는 자신들의 디지털 미래를 어떻게 살해해 왔는가」라는 글에서 웨인 로소는 이렇게 말했다.
“음악 산업에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앞장서서 개척하려던 희망, 지난 십 년 동안 수많은 기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 희망이 결국 그에 가장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었던 것, 즉 음악 산업 자체를 살해했다. 이제 판은 차려졌지만, 음악 비즈니스에 들어오려는 주목할 만한, 새로운 플레이어는 없다. 투자자들은 아무리 독창적이고 혁신적일지라도 더 이상 음악을 다루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자 음악 산업은 이제 진짜 음악을 파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회사들, 즉 애플, 아마존, 구글 등에 디지털 데이터 묶음을 제공하는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웨인 로소는 말한다. “이 거대 회사들은 막대한 이득을 남기고 있지만, 그중 99.9%는 디지털 음악 판매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더 나아가서 그는 “애플은 아이팟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가 현재와 같은 가격 파괴 방식으로 구조화하는 와중에 콘텐츠 생산자들이 자신의 콘텐츠로부터 이득을 얻는 모델은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금융 자본을 뒤에 업은 유통이 비즈니스를 장악했을 때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더 싼 상품을 찾아 지구 저 끝까지 떠돌고, 마침내 중국이나 방글라데시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극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에 건강을 해쳐 쓰러지면서 만든 제품들로 판매대를 가득 채우려 한다.
<전자책의 충격>에서 말하는, 자기가 하고픈 음악을 하고 팬들로부터 기부를 받아 삶을 유지하는 콘텐츠 생산 모델은 전형적인 침소붕대, 거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유승찬의 글 「오선지 위에 올라탄 리눅스 혁명」이 훨씬 더 통찰력이 있다. 그는 “20세기 저작권을 움켜쥐고 있다고 해서 21세기 비즈니스를 잘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공유 정신을 빨리 체득하는 게 성공을 위해 훨씬 빠른 길일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하면서 무료로 변해 버린 음악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콘서트 등 음악을 소비하는 또 다른 방식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는 음악 산업의 동향을 소개했다. 그는 “노래는 공짜이기를 원하고, 라이브 공연은 더욱 비싸지기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콘서트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 팬 층을 급격히 확대시키는 공짜 음악이 이 같은 현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심지어 “중국에서 난무하는 해적판을 꼭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유명해지면 더 큰 수익이 다른 데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크리스 앤더슨의 주장에 동조한다.
유승찬의 말대로 음반 산업은 쇠퇴했지만 음악 산업은 다른 대안을 찾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음악은 휴대전화 벨소리, 노래방 음원 제공 등으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냈다.(이 모델이 과연 음악가 전체가 공생할 수 있는 모델인지는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음반과 책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어 왔으며, 미래에도 그렇게 가기 쉽다.
첫째, 온라인 음악 서비스가 있기 전에도, 아이팟 같은 mp3 플레이어가 존재하기 전에도 기본적으로 음악을 들을 때에는 인간의 신체가 아닌 다른 듣기 도구가 필요했다. 라이브 공연에서 음악가들이 직접 연주하는 것을 들을 때를 제외하면 재생 도구인 축음기, 라디오, 텔레비전, CD 플레이어 등이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았다. 묵독이 책의 일반적 소비 형태로 정착한 이래 책은 그 안의 콘텐츠를 즐기는 데 눈과 손 외에는 아무 도구도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디지털 음악 콘텐츠는 아이팟 등 CD 플레이어보다 더 편리한 재생 도구가 나타나자 곧바로 소비자들의 대이동이 일어났지만, 킨들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전자책 읽기 도구들이 반드시 종이책보다 더 편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기에 아마도 당분간은 경제적 차원에서조차 한없는 경쟁에 시달릴 것이다.
둘째, 음악이든 책이든 미술 작품이든 논문이든 근대적 콘텐츠는 대부분 내용과 맥락을 분리해 일종의 독립된 세계를 구축한 후 그 세계의 심미적 완성도를 높이고, 그것을 즐기는 대가로 소비자들을 사는 구조로 존재해 왔다. 모두가 맥락에 참여해 끝없이 내용을 덧붙이거나 삭제할 수 있는 이야기와 대개의 경우 한 작가의 독립적 상상력의 소산인 소설을 생각하면 그 차이를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음악의 경우에는 음반과 같은 맥락 이탈적 생산-소비 방식이 존재하는 동시에 콘서트 가기나 노래 따라 부르기(노래방) 등과 같은 맥락 참여적 생산-소비 방식이 같이 공존해 왔지만, 책의 경우에는 낭송회 정도를 제외하면 맥락 참여적 생산-소비 방식이 근대 이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온라인 공간을 통해 맥락 참여적 생산-소비 방식이 조금씩 나타나기는 했지만 음악과 달리 그다지 급속도로 확산되거나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독자들이 가격을 지불하면서까지 전자적으로 읽고 싶어 하는 것은 여전히 종이책 형태의, 즉 맥락 이탈적 생산-소비 방식의 책일 가망성이 당분간은 높다.
따라서 아마존닷컴과 같이 가격 파괴 방식으로 전자책 시장을 수립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결국 스스로 자기 발밑을 파 버릴 것이다. 근대 이후 저자나 출판사는 맥락 참여적 생산-소비 수단을 거의 갖지 못했기에, 이럴 경우 결국은 작품 생산이 극히 위축되면서 생산량이 급속히 줄어들 것이고, 이는 다시 투자 축소와 작품 생산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연쇄로 나타날 수 있다.(《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전자책 시장이 어느 정도 활성화한 미국에서는 아마존닷컴의 가격 파괴 정책에 따라서 이미 신인 작가들에 대한 투자가 극도로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자책 시대, 작가들 핀치에 몰리다」(http://goo.gl/gKUH)) 그러면 아마도 우리는 종이책의 소멸이 아니라 책 자체의 소멸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음악가 이진원 씨의 죽음 이전에 쓰이고 발표되었습니다. 이제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음악 생태계는 근본적으로 재점검되어야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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